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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직장 생존법(브런치)

라떼는 말이야, 듣고 있니?

[끼인 세대 M과장의 하루]

 

M과장은 80년대 중간에 태어난 직장인이다. 밀레니얼의 문을 열었다고 평가를 받으나 실상 60,70년대 베이비부머와 90년대생 밀레니얼 사이에 끼어있는 조직의 중간자이다. 이른바 ‘낀 세대’로 불린다. 살아보겠다고 마스크를 꼼꼼히 챙겨 쓰고 집을 나섰다.

 

모두 입을 가린 채 눈은 핸드폰을 응시하고 있는 조용한 출근길 열차 안.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열심히 다니는 이 회사, 그리고 나, 제대로 가고 있는 걸까? 

열차는 어김없이 나를 어제 내린 그 곳으로 데려다 주었고 나는 의식 반 무의식 반으로 사무실에 도착했다. 멍했던 이유는 사실 따로 있었다. 

 

아랫층 모 부서 대리가 비트코인으로 초 대박이 나서 회사를 취미로 다니기로 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반신반의하던 코인의 광풍이 불고, 나 역시 한 달치 월급을 식구들 몰래 투자 했었다. 일장춘몽. 어느 날 갑자기 올라간 코인은 어느 날 갑자기 영문도 모르는 사이 추락하고 월급은 증발한다. 

유독 표정이 안 좋던 선배에게 물어보니 거의 연봉을 투자했다고 한다. 그의 불행이 나의 불행을 상쇄시켜줬지만 상황은 크게 나아진 게 없다. 전세대출 상환액이 한참 남았고 나름 자산 햇지 한다고 사둔 인버스 주식계좌 마저 거의 사망직전이다. 인생에 한탕이란 정말 없나보다.

 

5년 전 부동산 투자를 망설이던 스스로를 원망하며, 오늘도 정시보다 1시간 일찍 출근했다. M과장의 출근시간은 오전 8시~8시반. 왜 새벽 6~7시반부터 출근하는지 알 수 없는 임원님과 9시가 다 되어야 출근하는 후배님 사이, 

 

나의 출근시간은 지금 내 위치 만큼이나 어정쩡하다. 

 

10여년간 회사생활을 하는 동안 우리의 절반이상은 결혼을 했고 아이도 태어났다. 10년전보다 용기 레벨이 현저히 줄어든 우리는 자의반 타의반 회사를 다니고 있다. 그것도 아주 열심히. 

한참 일하고 있던 오후시간. 오늘도 나와 직급 연차 차이가 10년이 족히 넘어 보이는 어느 사원님이 예의와 절차도 무시한 업무 도발해 온다. 저것을 죽여 살려 주먹을 불끈 쥐었지만, 이내 친절하게 안내해드렸다. 호칭을 내려놓고 직장 민주주의를 실현하자고 선언한 회사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취지와 방향은 맞으나 현실은 리더 아래 모든 사원만 평준화된 반쪽 짜리 민주화. 마치 군대에서 열심히 10년 동안 선임들 수발 다 들고 이제 갓 병장이 되었는데, 갑자기 소대장 아래는 모두 같은 계급이라고 선포한 느낌. 웃긴 건 중대장, 대대장 보고와 지시 체계는 그대로이다. 밖에서 보기에 직장 문화 참 좋아진 것 같지만 어설픈 평준화로 아래 동네는 초토화이다. 

 

예전 같으면 선임이 타이르고 어르고 달래 잘 모르는 후배들의 기본기를 가르쳤겠지만, 

요새 직장에서 누가 누구를 가르치는 일은 드물다. 각자 살아갈 뿐. 

화난다고 달라지는 건 없다. 

 

젊은 꼰대가 되지 않게 마음을 다 잡아야지. 80년대생 늙은 평사원들끼리 평준화 할 거면 대표, 임원도 다 같이 해야하는 것 아니냐며 툴툴거리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그저 답답한 마음에 우리끼리 하는 말이다. 민주주의 사회 말도 못하나. 못한다. 그분들 앞에선. 위로도 아래로도 아무 말도 못하고, 돈도 없고, 소처럼 일만하고 있는 내 인생 정말 괜찮은 거니?

 

직급은 내동댕이쳐졌지만 우린 회사의 수익을 책임지고 실질적인 기획을 도맡아 하고 있다. 임원들은 팀장을 찾고, 팀장은 우리만 찾는다. 수당 1원도 더 나오지 않음에도 책임과 업무의 양은 팀장급, 아니 어떤 때는 임원급. 

어느 경제학자의 말처럼 적어도 월급의 7배는 벌어야 하는 우리. 제 몫을 하느라 정신없이 하루가 간다. 누가 이 따위 목표를 줬어! 누군가 외친다. 미안, 우리가 했다. 리더가 지켜보는 가운데, 우린 스스로 달성하기에 상당히 무리가 있어 보이는 목표를 짤 수 밖에 없었다. 더 깊게 더 멀리. 

 

회사 사전에 불가능이란 없다. 

목표 달성을 종교처럼 믿으며 앞만 보고 달려간다. 그렇게 일주일, 한달이 가고, 어느새 분기, 연 마감을 하라고 재촉한다. 그렇게 우리의 10년이 흘렀다. 참 많은 것을 했는데, 손에 잡히는 게 없다. 

 

학창 시절, 세상 대부분의 집이 망하는 걸 보았다. 다리가 끊어지는 것도 건물이 쪼개지는 것도 보았다. 대한민국 축구가 세계 축구 4강에 올라 온 길거리로 쏟아져 나왔을 때에도 대학 갈 놈은 다 갔다. 이례적인 성과와 짜릿한 골 장면을 보며 이제 열심히 일한 만큼 보상받는 시대가 오겠구나 싶었다. 문어발식 지원과 시행착오 끝에 어렵게 남들이 좋다고 하는 회사에 입사를 했다. 

한 분야에서 10년 정도 일하면 회사의 임원은 당연히 되는 줄 알았다. 혹은 스타트업 대표가 되고 유명 잡지에 이름이 날 리거나. 그러나 이젠 앞선 세대의 라떼 이야기가 그저 부럽기만하다.

회사에서 열심히 일하는 것이 미덕이었던 시대.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 

 

요즘 신입사원은 당신이 생각하는 ‘우리 애들’이 아닌 것처럼. 세상은 변했고 노력과 보상이 일치하던 시절도 끝났다. 어제와 비슷한 내 인생이 어느 날 갑자기 4강에 오를 일은 없다.

 

팀장이 지시한 프로젝트를 완수해 나간다. 내가 봐도 멋진 보고서. 돈이 안되는 건 이렇게 기가 막히게 잘한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10년간 직장을 둘러싼 강산은 변했지만 어째 나는 그대로이다. 변화하지 않는다면 그들은 나를 언제까지 사용해 줄 것인가. 

 

저녁 6시반. 후배들이 모두 떠난 사무실. 리더들은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아직 회사에 미래와 미련이 남은 사람들이다. 누가 가지 말란 소리는 안했지만 갈까 말까, 몇 번 고민하다 주섬주섬 짐을 챙긴다. 

 

적적한 퇴근 길, 오늘도 나 대신 열심히 일했을 주식 창을 열어본다. 전업투자자들은 오전 9시가 되기 전부터 가슴이 설렌다고 한다. 나도 한번쯤은 다른 이유로라도 월요일 오전 9시부터 설레어봤음 좋겠다. 내가 일하는 사이 너도 참 애썼다, 파랗고 빨간 나의 주식. 

애쓴 만큼 꼭 결실을 거두기를 바래. 언젠가는.

MDmon

매거진 글을 보신 한 출판사 편집자님 연락을 받아 출판 계약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작은 채널에 뜻하지 않게 좋은 기회를 얻게 되었습니다.

 

* 올해는 거의 매 주말마다 원본 수정하고, 주제 잡고 제출하기를 반복하느라

글을 많이 못 올렸네요ㅜㅜ 죄송합니다.

몇번 초고를 다듬는 작업이 마무리 단계이구요, 올해 안에 책으로 나올 것 같습니다.

 

* 출판은 새로운 경험이었어요.

저도 나름 글을 쓰면서 살아온 인생을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책을 전문으로 일하시는 전문가님께서가 제 글을 한줄 한줄 뜯어보고

이건 좋다, 아니다 의견을 받고 있는데, 

내 글의 주관성에 대해 그리고 더 좋은 글에 대해 많이 배우고 있습니다

 

물론 조금 아는 것들이나 방향성이나 전체적인 의견을 주시고요

그것에 대해 판단하고 수정하는 것은 제 몫입니다.

 

* 지금 올린 글은 편집자님께서 전체 책의 내용과 달리 

방향성이 조금 다르다는 의견을 주셔서 

내용 전체를 뺄까하다가 구독자님들의 의견 받아보고자 올려봅니다.

 

* 책 전반은 앞선 매거진 글과 비슷한 느낌의 글이구요. 

이 글은 제가 현재 느끼고있는 바들을 수필의 주인공을 내세운 단편소설처럼 짧게 구성한 글입니다.

댓글로 의견 주시면 더 좋은 책으로 보답드릴게요~

 

감사합니다^^